기쁨이 있는 사랑 | 梁榮友 목사 | 2011-0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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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있는 사랑 よろこびのある愛 고전 13장 6절 이 기쁨이란 단어는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마소스와 카라가 그것이다. 마소스는 세상적인 기쁨을 의미하고, 카라는 세상적인 조건이 없는 기쁨을 말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가운데 하나인 기쁨은 카라 입니다. 즉 성령의 열매인 기쁨은 세상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내 마음에 임재하실 때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읍니다. 즉 하나님 자신이 곧 기쁨입니다. 1970년도 유행한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라는 희트곡이 있읍니다.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줄 알았다면 차리리 당신만을 만나지나 말 것을 ,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많은 않겠어요. 그리고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이라는 곡은 모르는 사람이 없읍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믈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을 다면 ,,, 왜 이런 노래가 대중의 인기를 얻을까요? 그것은 같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윤수일씨가 그 노래를 부르면 저할게 잘 생긴 가수도 사랑이 어려워서 사랑을 안 하겠다는데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하겠는가? 사랑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는 공감이 있기 때문에 그 노래가 히트를 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어른들 세대가 이렇게 한이 많고 맺힌 것이 많아서 어둡고 칙칙한 노래가 히트를 쳤나보다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요즘음 젊은이들도 보면 백지영의 사랑은 총 맞은 것처럼 이라는 노래가 있다고 합니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표현도 아주 끔찍합니다. 사랑은 총맞은 것처럼 너무 고통스럽고 아프고 절망이라는 이런 종류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부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잘못된 사람의 결과는 반드시 눈물이고 후회며, 절망이고 좌절이고 총맞은 것처럼 아픈 것으로 끕납니다. 그러데 오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정반대입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사랑은 총 맞은 것처럼 아픈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랑은 기쁨이다 라고 합니다. 바울이 지금 그렇게 말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한 것 때문에 한평생을 절망 속에서 보내야 할 사람이 되었읍니다. 바울이 만약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잘 나가고, 세상에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뻔했는데, 예수님을 잘못 만나서 인생을 비참하게 살고 있읍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은 기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나 대상자을 잘못 만나면 총 맞은 것처럼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치 없는 자를 가치 있다고 애쓰며 나가는 데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그 안에 이상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6절에 주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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