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에서의 바울의 선교 | 梁榮友 목사 | 2011-02-27 | |||
|
|||||
아덴에서 바울의 선교 행전 17장 16-25절 사도바울은 지금 소아시아 지역의 전도를 다 마치지지도 못하고 유럽지역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서 헬레니즘의 산실이요, 그리스의 문화와 예술과 철학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아덴이라는 지역으로 옵니다. 우리 지금까지 사도행전의 역사를 배워왓읍니다. 다시한번 정리합니다. (1)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역사(성령의 역사) 가 시작되는 단계 (2) 안디옥 중심으로 하여 성령의 역사가 소아시아일대로 확산되는 과정 (3) 소아시아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막으시고 바울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단계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 땅을 밟게 하시는 것입니다. 16-17절을 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1) 복음은 농촌,어촌, 미개인들이 사는 지역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보면 복음전도는 장소나 시간이나 사람의 제한을 받지 않읍니다. (2)문화와 철학, 에술이 발달된 지역에는 대부분 우상과 미신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을 봐도 동일합니다. 선진국 중에 선진국이라고 하는 곳이고, 과학이 발달된 곳이지만 그들의 물질문명 속에서 범죄와 도덕적타락, 물질숭배 사상, 사탄 숭배들이 가득합니다. 그 당시 바로 아덴이 그런 지역이었읍니다. 이곳으로 간 바울에게 나타난 반능이 무엇입니까? (1) 분노였읍니다. 문화적 가치나, 에술적 가치나 건축물의 아름다운 모습 보다는 도리어 분노가 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러분들이 신사, 절이나 우상숭배하는 것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느낀 적이 있읍니까? 우리들은 진짜 분노는 못내고 하지 않아도 되는 분노를 잘 냅니다. 마귀는 우리들의 약점을 너무 잘알고 있기에 건축물보고, 절을 보고,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아름답고 하고, 교회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분노내게 하고, 화를 나게 만듭니다. 바울이 살던 그 당시 아덴에는 이만 오천에서 삼만개의 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우상이 많은 지역인지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2)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곳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먼저 회당입니다. 유대인들과 경건한 지성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젼증하고, 그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듣는 대상이 18절에 기록되었읍니다. 다시 봅니다. 아덴 사람들은 매우 철학적인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리고 드 당시 두 철학 학파가 아덴을 지배하고 있엇다고 합니다. 먼저 에비구레오 학파입니다. 즉 에피쿠로스 학파입니다. 그리고 스도학파입니다즉 스토아 학파입니다. 전자인 에피쿠로스 학파는 무신론적 사상이며, 인생의 최고의 목적을 쾌락과 행복의 추구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후자는 범신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파입니다. 바을의 이야기를 들으니 메우 새로운 것이기도 하고 호기심도 가는 사람들도 잇지만 반대로 이방신을 전한다고 하고 말쟁이라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바로 18절 후반절에 나오는 예수에 관한 것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에수에 관한 것이라면 바울이 그 분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그 분이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덴 사람들의 사상으로는 이 두가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세상의 철학과 종교견해와는 다릅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좋은 말을 많이 합니다. 진리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가? 그것은 독선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만든 철학이나 종교에 무슨 구원이 있겠읍니까? 여러분 이런 말에 도전을 받지 마십시요.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셔야만 됩니다. 내가 잘하고 내가 선해서 구원을 받는 다면 하나님께서 필요없을 것읍니다. 지금의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곳을 아레오바고 라고 합니다. 그곳은 재판과 입법을 주관하고 의회모임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종교와 도덕을 논쟁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을 그곳으로 데리고 와서 네가 말하는 새교가 무엇인가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19-21절을 봅니다. 아덴 사람들에게는 유일하신 하나님 그 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새 신이 있는가 하고 기대를 하고 있읍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유행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옷, 새로운 헤어 스타일, 새로운 화장술, 새로운 구두의 유행등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도시에 살면살수록 이러한 유행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경향이 많이 있읍니다. 그래서 사용하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사는 심리도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무엇인가 허무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꾸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말씀으로 가득찬 사람은 이러한 마음이 없읍니다. 그것을 잘알고 있는 바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덴 사람들의 속성을 안 바울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한 내용이 바로 22-31절입니다. 오늘은 25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댓글 0